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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1. 4. 02:37 from 카테고리 없음




1.

 로빈이 운영하는 카페는 바다가 잘 보이는 휴양지 근처에 있어서, 여름 아니고서야 붐빌 일이 없는 조용한 곳이었어. 소음이라고 해 봐야 도로에 차 지나가는 소리가 종종 나는 정도이고 손님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됨.

 그런 로빈의 카페에는 그녀가 주워 온 것들로 꾸며져 있었어. 취미가 아침마다 도로를 따라 산책하는 거였는데, 그 때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주워 오곤 했어. 그게 돌이든 무엇이든 관계없이. 물론 사람이어도 상관없었지. 상디도 그렇게 로빈에게 주워져 와 일하게 된 거였거든. 

  정확히 5년 전, 상디는 애인과 여행을 가던 도중에 차였어. 차가 애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대로 자신의 짐을 들고 도로에 내려서 차가 떠나가는 것을 바라봐야 했음. 여유로운 것을 좋아하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해왔기 때문에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는 익숙치 못했던 상디는 왠지 울 것 같아져서 차가 지나가던 말던 상관없이 쭈그려앉아 시선 끝에 닿는 바다를 응시했어. 그러던 차에 산책나왔던 로빈과 만나게 되었고, 카페에서 차를 대접받게 되었지.



2.

 로빈이 내놓은 커피는 그녀의 미모에서 나올 수 없는 폭력적인 맛이었어. 개장한지 얼마 안 되었다는 그녀의 말과는 달리 천정이나 테이블에선 관리되지 못한 흔적이 역력했지. 아무리 사람이 오지 않는 곳이라도 좀 더 꾸미면 좋을 텐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상디는 카페에서 일하기로 했고, 그 뒤로 카페는 좀 더 정돈된 분위기가 되었어. 



3.

로빈은 자리를 비운 시간이 카페에 있을 때보다 길었어. 로빈이 카페 주인이라는 것 외에 상디가 아는 것도 실제로 없었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지. 미녀라는 거. 그 정도면 계속 일하는 이유로 충분하지. 성적 기호에 관계없이 예쁘면-특히 여자라면-좋아했기 때문에 가능한 사고였어. 거기다 이제와서 예전에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라면 이유였지. 

 테이블을 원하는 각도로 맞추고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려는데 멀리서 로빈이 보였어. 인사하려고 손을 들어올리던 상디는 말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었어. 무언가 또 주워 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왠 남자애가 같이 걸어오는 거야. 얼굴은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지만 행색은 노숙자라고 해도 될 정도로 꾀죄죄했어. 집에서 뛰쳐나온 건가? 싶었지만, 왠만한 동네로 가려면 자동차로 달려도 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걸어서 오기엔 어렵지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로빈은 이미 카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있었어. 


"저기, 로빈 씨. 이건..."
"개야. 이름은 루피."
사람인데요. 이런 이족보행 개는..

"저기, 그..."
이미 사람인데요 라고 속으로 한 번 말했지만 입 밖으로는 차마 내지 못했던 상디는 다음 말을 어떻게 이어야 할지 고민했어.

"이제부터 여기서 지내게 할 거야. 어떻게 생각해?"



4.

어떻게고 뭐고... 상디는 시선을 로빈 옆으로 돌렸어. 마음대로 정해도 될텐데 굳이 물어보는 이유는 카페에 쓸 만한 방이 하나밖에 없고, 그것을 상디가 쓰고 있기 때문일 테니까. 카페는 복층 다락방이 딸린 2층 건물이었고, 1,2층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소품들로 꾸며져 있었어. 

"?" 
로빈의 의아하다는 듯한 시선에 눌린 상디는 입을 열었어.

"아무리 떨어져 있는 거라도 그렇지 사람을 주워오면 어떻게 해요. 어떤 녀석인지도 모르는데 함부로 들이면.."
그 때, 상디가 만든 쿠키를 집어가는 손이 눈에 들어왔어. 
"야, 막 집어 먹지 마!!;"
"이거 너가 만든 거야?"

이미 무시한 채 집어먹는 녀석의 태도에는 열이 받았지만 너무 맛있게 먹고 있는 것 같아 차마 뺏을 수가 없었던 상디는 퉁명스럽게 대답했어.

"그래."
"무지 맛있어..!!"

딱 봐도 잘 먹게 생긴 녀석이었지만 쿠키 하나에 이렇게까지 화사한 표정이라니.. 많이 굶었나. 칭찬에 약했기 때문에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고, 그 타이밍을 로빈은 놓치지 않았어.

"역시 괜찮을 것 같지? 일은 시킬 생각 없으니까, 방만 청소해 둬요."
"...네."



5.

  상디 자신도 카페에 정착한 뒤로 사들인 것이 옷 외에는 없었던데다 매일 방을 정리해두는 편이었기 때문에 루피의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어. 거기다 예상한대로였지만, 루피는 상디가 자리를 내어주자마자 자기 물건을 꺼내지도 않은 채 가방을 그냥 통째로 옷장 위에 올려두었어. 실로 간결한 입주였고 과정이야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 이후로 루피는 개라는 명목으로 카페에 자리잡았어. 그러게 개가 아니라니까. 
 루피는 가방을 놓자마자 씻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엎어졌고, 상디가 씻으라고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깊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어. 가끔 가르릉거리는건지-정말 개인가-코 고는건지 싶은 소리가 났음. 깨우는 걸 포기한 상디는 조용히 문을 닫고 1층으로 내려왔어. 로빈은 [환영식 정도는 해주는 게 좋겠지?]라는 쪽지만 남긴 채 시내에 나갔는지 없었음. 그것보다 의문형으로 쓰셔놓고 의견도 안 구하시는 겁니까..? 사소한 의문은 접어두고 상디는 설겆이를 하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음.



6.
 달그락거리며 접시를 닦고 있을 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어. 처음엔 로빈인 줄 알았지만 발자국 소리가 아니었음. 이 시간에 손님이 올 일이 없는데.. 하며 상디는 고개를 돌렸고 그 순간 안색이 싹 가셨어. 상디는 원래 기본 표정이 좋은 편이지만, 그 기본은 대개 여자에게 국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자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그다지 없었어. 그리고 다시 설겆이를 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 소리의 주인은 로빈의 소꿉친구-라기엔 액면가 차이가 너무 난다고 생각했지만-크로커다일이었어. 로빈은 딱히 그 사실에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크로커다일에게 친절히 대해 주는 것도 아니었어. 평소와 표정이나 태도는 같았지만, 웃는 얼굴로 말에만 가시가 돋힌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친근한 분위기는 아니었거든.
 주인의 친구라 해도 손님은 손님이지만, 저 녀석은 왠지 싫다고 상디는 생각했어. 평소에 늘 오만상인데다가 로빈한테 하는 태도를 봐도 생색을 내며 잘해주는가 하면, 가끔 짜증을 내기도 하고.. 잘 해준다는 게 무슨 감투도 아니고..싶은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아 상디로써는 이해가 가지 않는 사람이었음. 아마 가끔 왔더라면 괜찮았을 텐데, 크로커다일이 카페 매상의 95%를 차지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뻔질나게 드나들었기 때문에 이미 손님 취급도 못 받고 있었음. 그냥 돈 쓰는 포지션으로 출근하는 직원 같은 느낌이었어.

"직원 교육이란 게 말만 하고 실행은 안 하는 건가 보지? 하여간 카페 주인이나 고용인이나 손님한테 태도 불손한 건 매한가지로군."

인사 안하는 직원은 뭐하러 쓰냐고 로빈한테 수없이 딱딱거렸던 모습이 이제서야 떠올라 상디는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짧게 고개를 숙였어.

"아이고, 죄송합니다. 지금 움직일 수가 없어서요. 어서오십쇼 손님~"

로빈이 지금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안 봐도 훤하리라 생각하며 크로커다일의 다음 말을 기다렸지만, 말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길었어. 자켓 안쪽에서 뭔가 찾고 있는 것 같았음. 손바닥이 테이블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어. 뭔가 올려놓은 것 같은데. 벌써 돈부터 꺼낼 린 없고.

"이 녀석 말인데. 혹시 카페에 온 적 있나?"

사진인 모양이었어. 성수기처럼 일일이 확인할 수 없이 많고, 매해 바뀌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오는 손님이 크로커다일 정도가 전부인 곳에서 얼굴을 일일이 기억할 수 있을 리가 없었어. 스스로의 기억력에 자신이 없어진 상디는 억양만 깍듯이 해서 대답했어.

"손님, 여기 민간조사센터 아니거든요. 장르부터 다르거든요."
"뭐야? 사진부터 보고 얘기하라고."
"배려심 없는 손님일세. 지금 움직일 수가 없다니까요. 그리고 아시잖아요, 여기 매일 얼굴도장 찍는 손님이 손님 말고 누가 더 있어. 거기 놓고 더 용무 없으시거든 가보세요."

크로커다일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어. 

"그래. 그럼 가보지."

정말 이거 하나 때문에 온 건가? 크로커다일이 나가고 나서야 사진이 궁금해진 상디는 접시와 잔을 모두 닦아 싱크대에 올려둔 뒤 테이블로 와 사진을 집어들었어. 그리고 사진을 쥔 상디의 시선은 저절로 천장을 향해 올라갔어. 크로커다일이 놓고 간 것은 루피의 사진이었음.




7.

 환영식이라고 해봐야 별 거 없지만, 로빈은 혼자 다 어떻게 들고 왔는지 모를 만큼 이것저것 많이 사왔어. 산더미같단 말이 딱 맞겠지. 아마 평소에 말만 나오고 쓰지는 않는 그녀의 차를 몰고 나갔다 온 모양이었음. 루피는 쉬지 않고 먹으면서 떠들기를 반복했어. 하지만 주로 실없는 얘기였고 상디가 꼬투리를 잡는 걸로 마무리되었음. 약속한 것처럼, 여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원래는 어디에서 살고 있었는지 같은 신원 이야기에 대해선 로빈도 상디도 묻지 않았고 루피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시간이 새벽이나 되어서야 루피는 배가 부르다며 다락방으로 올라갔어. 아무리 오는 길에 쫄쫄 굶었대도-아니, 오히려 너무 굶었다면 안 먹혀서라도 못 먹는게 정상이지-살다살다 그렇게 잘 먹는 애는 처음 봤어. 아마 못 먹어도 그만큼 먹는다는 얘기니까.. 뭐 식비가 곤란할 정도가 되면 로빈 씨가 알아서 하겠지. 
로빈은 크로커다일이 왔다는 이야기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지만, 사진을 두고 갔다는 이야기에는 표정이 조금 바뀌었어.

"당분간 오지 말라고 해야겠네. 다쳤다는 게 아무래도 머리 쪽이었나 봐."
"예?"
"아까 만났다고 하지 않았어? 수술받았다고 하던데."
"아..사실은 얼굴을 안 보고 이야기해서."
"몇 바늘을 꿰매는 대수술이었다고 하더라구. 얼굴에 일자로 흉터가 생겼다고.뺨을 다 가로지른대나."
"그렇게 다쳤다고 쳐도 출혈량 때문에 살 수나 있습니까, 그거..?;"
"모르겠어."
얼굴 볼 걸 그랬다.



8.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로빈은 크로커다일에게 사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고, [당분간 자리 비울 테니까 카페에는 오지 마. 직원들이 너 싫어해.] 라는 요의 연락만 했을 뿐이었어. 직원이 단수에서 복수로 늘어났지만 크로커다일은 이미 [날 싫어하는건 직원이 아니라 니코 로빈 그 자체다]라는,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지만 로빈 자체를 초점으로 둔 생각 때문에 흘려듣고 말았음. 해외로 떠나는 거라면 데려다 줄 수 있는데..라는 말을 삼키고 크로커다일은 머리를 박박 긁었어. 애초에 챙겨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혼자 잘 살다 못해 오히려 여럿이서 사는 것을 곤란해하는 사회 부적응자 여자한테 신경써줘서 좋을 게 뭐라고. 생김과 행동답지 않게-정확히는 자기 앞에서 답답하게 행동하면 스스로 갑갑함에 참지 못하는-사는 게 죄지. 크로커다일은 하고 싶은 말을 다 삼키고 한 가지만 묻자고 결정했어.


[그래서 언제 돌아올건데?]
[반 년 뒤.]


사람 찾기는 혼자서 해야 하겠군. 로빈과 아주 상관없지는 않을 텐데. 어쩌면 로빈도, 자신이 모르는 방향으로 대충 감을 잡은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크로커다일은 담배에 불을 붙였어. 당분간 그 시골짝까지 갈 일은 없겠구나 생각하면서. 덕분에 크로커다일은 반 년을 낭비하게 돼.




9.

 카페에는 루피와 상디, 둘만 남았다. 로빈은 훌쩍 떠났다가 몇 달 뒤에 돌아오는 일이 잦았기 때문에, 상디 혼자 카페를 지키는 것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딴 사람이 딸려 있는 것은 처음이었다. 루피는 하루종일 옆에 붙어서, 뭐 하는지 모를 수가 없게 훤히 보이는데도 [뭐 해?] 라던가 [우왓, 맛있겠다!] 같은 아무래도 좋은 말만 반복하며 주변을 떠나지 않았다. 밥을 퍼먹다가 컵이나 접시를 깨먹는 일도 종종 있었다. 한달같은 일주일이 지났고, 상디는 이대로면 몇 달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그래도 로빈 씨와 둘만 있을 때보단 좀 더 사람 사는 곳 같아지긴 했지.' 
정신 사납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약간 외로웠던 모양이다.
"야."
"엉?"
"담배 피울 거니까 저리 가 있어."
가끔 이렇게나 오지게 귀찮은데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걸 보면...
"괜찮아, 막 피워. 에이스도 피웠었는걸."

에이스가 누군데. 쯧 소리를 내며 상디는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역시 사람이 옆에 있는 건 신경쓰인다.

"맨날 보는 거 뭐가 신기하다고 그렇게 보냐?"
"너 눈썹. 진짜 웃기게 생겨서. 쳐다보기만 해도 재밌어."
"뭐야, 눈 밑에 흉터 달고 할 소리냐. 대체 뭘 하면 그렇게 되는데?"
"아, 이거?"

루피는 뺨의 흉터를 죽죽 늘리며 웃었다. 
'웃을 일인가?' 
보통 그러던가? 잘 모르겠다. 
로빈의 카페에서 일한 지 몇년이 지났고, 그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사람을 가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상디는 루피와 둘이 남게 된 요 일주일간 깨닫고 있었다. 행동 하나하나에 꼬투리를 잡아가며 수상하다거나, 어울리기 꺼려진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아마도 예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관심이 없으면 없었지. 
'그렇게 생각하니 어쩐지 미안한 것 같기도 하고.'


"상디."
"엉?"
"배고프다. 담배 그만 먹어. 나 밥 줘."
싹 취소할거다. 웅얼거림은 루피의 귀에 들어가기 전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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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전미션

2011. 12. 31. 11:19 from 카테고리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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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웃음 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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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2011. 10. 28. 10:58 from 카테고리 없음
이글루 관리도 어려웠던 나한테는 얜 뭐 외계어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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